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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공부일기

스타트업 신입개발자 생존기 - 송년회와 새해, 번아웃과 무기력증

by hobbiz 202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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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지난 글에 이어서
입사 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는 과정,
그러니까 입사 후 6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겪었던 일들을 적어보도록 하겠다.


1.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스타트업의 송년회


새 기획자가 아직은 떠나기 전 12월 말,
나는 새로온 기획자가 기획과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을 돕고 기획은 개발자들끼리 따로 하면서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었다.

웹개발팀은 출시까지 한 달도 안남은 상황에서 아직 작업하지 못한 페이지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계속 인원 요청을 하고 있었고, 다행히 새로운 리액트 경력자를 한명 더 뽑아주셨다.

그래서 우리 팀 5명 중에 2명이 한 달도 안된 신규 인원인 상태였고, 남은 작업을 끝내기에는 아직도 갈길이 멀어서 야근도 하고 기획도 다시 보고 엄청 바쁘게 일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슬랙(회사 메신저)에 DM방이 개설되었다. 대표님, 나, 신규개발자, 옆팀 디자이너 이렇게 4명이었다.
이게 뭐지? 하고 보니 송년회 TF란다... 송년회... 하아... 우리가 그런거 할 여유가 있나?ㅠㅠ
뭐 일단 대표님이 또 뭔가를 무척이나 하고 싶은가보다... 하면서 들어보니, 신서유기처럼 퀴즈내고 점수따고 이런걸 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파티처럼 음식도 차려놓고 샴페인도 터뜨리고 풍선도 불고 이런 고급진 파티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송년회 시간표와 예산을 엑셀로 정리해서 공유해라, 대본을 써라, 게임 시나리오를 적어라, 피피티를 만들어라... 하아 진심 화딱지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꾹꾹 참으면서 일단 우리가 업무시간에만 백엔드와 소통을 할 수 있으니, 그 송년회 기획은 저녁을 먹고나서 우리끼리 짬짬이 알아서 할테니 근무시간에 너무 보채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렇게 얘기를 해도 자꾸 "송년회 준비 언제돼요? 어디까지 했어요?" 계속 물어보고 기획은 기획대로 나한테 물어보고 개발은 개발대로 해야하고 스트레스가 끝까지 찬 와중에, 풍선 터뜨리기 게임을 하자느니, 음식 주문을 해라, 마켓컬리에 뭘 시켜라, 선물을 사와라, 선물을 환불해라, 와인잔이 없다 난리도 아니었다. 하... 송년회 준비한다고 며칠을 야근을 한건지... 나만 하는거면 괜찮은데 지켜주고 싶은 신규 개발자까지 왜 같이 시켜가지고...(지못미ㅜㅜ)

아무튼 그 과정에서 짜증도 좀 내고 정색도 하면서 우여곡절 송년회 준비를 마무리했다. 마지막날은 밤 11시까지 풍선을 붙이곸ㅋㅋㅋ 덕분에 그 날 새로온 개발자분이 우리 이거 끝나면 꼭 술한잔 하자면서 술약속을 먼저 잡으실 정도로 유대감이 커졌다ㅋㅋㅋ

아마 다른 개발조직들도 비슷하겠지만, 우리 회사 사람들은 일 말고 다른걸 시키면 매우 싫어하고 MBTI도 파워 I성향에 게임같은걸 신나게 할 것 같지 않은 분들이많았다. 그래서 송년회날 오전에 일을 마치고 점심부터 빠르게 술을 먹였다. 그리고 재밌게 놀아주셔야 우리 일찍 퇴근할 수 있다고 협조 요청을 미리 드리고 게임을 시작했다.

다들 칼퇴에 목이 말랐는지 진짜 재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모든 게임을 필사적으로 해주시고 다들 귀가 터질것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노는게 아주 보기 좋았다ㅋㅋㅋ 특히 우리 대표님도 게임에 참여를 시켰는데 마지막 결승전까지 치열하게 싸우면서 다들 서로 죽일듯이 게임을 해주셔서 게임을 준비한게 나름 보람 있었고, 무의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송년회도 팀 빌딩에 꽤 좋은 역할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동안의 짜증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날 퇴근 후 송년회 TF는 바로 한 잔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무슨 얘기 했는지는 안비밀!)


2. 새해가 밝았습니다. 출시가 한 달도 안남았습니다.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 작업은 체감상 2/3 정도만 끝난 상태였다. 테스트와 버그잡는 것 까지 생각하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새해가 밝자마자 새로온 기획자이자 우리의 새 팀리더님은 퇴사를 했고, 남은 개발자들은 아직 정리가 안 된 기획을 다시 정리하고 새로운 기능을 개발해야 했고, 새로 오신 개발자분은 프로젝트 구조와 기획서를 봐야하고 시간적으로 인원적으로 막막한 상황이었다.

아직 출시 일자가 1월이라는 것 말고는 정확한 날짜를 듣지 못해서 계속 확인중이었는데, 1월 말에 설날 연휴도 있고 해서 1월까지 개발 마무리를 하고 2월달부터 출시를 하자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서버팀은 기존 고객들의 데이터를 받아 마이그레이션하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기획도 다시 확인하다보니 API 개발과 수정도 점점 밀리기 시작했고 프론트 개발팀은 남은 작업을 정신없이 마무리 하면서 API 수정요청도 하면서 일을 진행했다.

웹개발팀은 '기획 + 디자인 + 개발 + 테스트' 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디자이너가 있긴 하지만, 디자이너도 어느 정도의 배치와 기능적인 기획이 되어야 만들 수 있는 인턴분이었고 수정된 기획도 정리가 필요해서, 우리가 먼저 개발을 해서 디자이너에게 보여주면 디자이너가 폰트나 크기 정도만 수정하는 식으로 급하게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연말에 새로 오신 개발자분은 이름을 들으면 다들 알만한 덩치가 커진 스타트업에서 오신 분이었는데, 개발자가 이렇게 모든 일을 다 하는것에 대해 많이 놀라며 의문을 많이 제기하셨다. 우리도 그런 의문은 한참 전부터 있었지만, 새로온 기획자를 한 달간 적응시켰지만 나가버린 후 또 새로운 사람을 뽑아서 새로 적응시키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눈앞에 출시를 앞둔 상황이라 어떻게든 1월까지 일을 해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모든 체력과 정신력을 쏟아부어 개발을 했고
약속된 1월 말, 1차로 출시하기로 한 범위의 웹 개발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3. 새해 계획과 무기력증

중고등학교 때부터 작년까지도 나는 새해가 되면 매년 설레는 기분과 함께 한 해동안 해내고 싶은 계획을 다 적고, 작심삼일이 될 지라도 며칠 또는 몇 달간이라도 열심히 살려는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새해를 맞아 옆팀 개발자와 자기계발 겸 스터디를 하기로 하고 계획을 세웠는데, 출시에 치이다 보니 그 계획을 전혀 진행할 수 없었고 해야한다는 강박만 남은채로 엄청난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거기에 더해 운동은 전혀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커피와 군것질로 버티다가 저녁이 되면 허기가 느껴져서 고칼로리 배달음식으로 폭식을 하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몸도 안좋아지고 살도 많이 쪘다. 그러면 운동을 가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운동 갈 시간이 없으니까 그것도 죄책감으로 느껴지고 오히려 또 스트레스로 뭘 먹게되고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1월 말에 드디어 개발이 어느정도 마무리가 되었지만, 또 수많은 버그와 수정사항들이 생기면서 쉴 틈이 없어지고 아무도 만나기 싫고 귀찮아지면서 괜히 아무 것도 모르는 부모님과도 한 번 크게 싸우게 되었다.

매일 '일 -> 폭식 -> 잠 -> 일 -> 폭식 -> 잠' 이렇게 반복되는 새해를 보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5키로가 쪄서 내 인생의 최대 몸무게를 찍고 있었다.

항상 마른 몸으로 살다보니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정신을 차리고 1주일 정도 바짝 다이어트를 해서 3키로를 빼 봤다. 하지만 요요현상으로 다이어트 전 몸무게로 금방 다시 돌아왔다. 오히려 뭘 안먹으려고 노력을 하니 자꾸 다른게 먹고싶어지는 이상한 나날들이었다.

그 즈음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에게 폭식에 관련된 다큐를 보여주었는데, 오히려 뭘 금지시키면 더 그걸 하고싶게 된다는 실험결과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다이어트는 그만 두고, 그냥 건강한 음식을 찾아 먹고 운동도 하고싶을 때만 하기로 했다. 헬스장 갈 기력이 없다보니 그냥 스텝퍼를 하나 사서 심심할 때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스터디도, 같이 하기로 한 분께 솔직한 심정을 말해주고 잠시 멈추기로 했다. 지금 출시준비로 너무 바쁜데 그걸 하려니까 너무 의욕이 없고 오히려 더 하기 싫어졌다고 말하니 그분도 자기도 똑같이 느꼈다면서 우리가 하고싶어질 때 다시 각자 하면서 진행상황을 공유해주기로 하고 잠시 스탑했다.

그리고 나서 어쩌면 시간낭비일 수 있겠지만, 개발과 관련없는 취미생활을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어릴 때 부터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입시까지 생각하게 되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미술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때 '나중에 돈벌고 나면 내돈으로 미술용품 다 사고 내가 하고싶은거 다 할거야!'라고 결심했던 적이 있다.
그치만 막상 돈을 벌고 나니, 생활하기도 빠듯하게 느껴졌고 남는 돈이 있어도 먹고 노는데에 쓰기 바빠 그림그리는 취미를 하기에는 아직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마침 그 기억이 떠올라 동네에 화실을 찾아보게 되었고, 근처에 괜찮은 가격으로 취미미술을 하는 화실이 있어서 등록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다니게 되었다.

확실히 잠시라도 컴퓨터에서 눈을 떼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게 힐링이 되었다. 혼자 하면 꾸준히 못 할 일인데, 돈을 내고 정기적인 날짜가 정해져 있다 보니 어떻게든 가게 되는 것 같다. 덕분에 무기력증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3개월 만에 블로그에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런 모든 행동들의 결과라고 생각하니 정말 감사하다.

혹시라도 번아웃을 겪게 된 개발자가 있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활동 중에 컴퓨터로 하지 않고 생각만 해도 즐거운 활동을 정기적으로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정식 출시일이 다가왔고!
우린 난리가 났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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