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엄청 오랜만에 생존기를 적는다.
그 사이에 엄청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생각을 정리할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은 기다리던 추석 연휴의 시작..!
하루 종일 누워있다가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카페에서 그동안의 일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것도 거의 3부작 될 거 같은데...
일단 무작정 써 내려가 보겠다!
1. 회사에 돈이 떨어지기 시작하다 (3월)
나는 그동안 대기업과 안정적인 회사들만 다녀봤어서 월급이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개념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기회가 큰 만큼 위기도 크다는 것은 인지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금방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약속된 고객사가 있었고, 출시를 하고 나면 그 고객사에서 월 사용료를 받기로 계약을 하고 그 회사를 위해 시스템을 개발했기 때문에 출시만 하면 수익이 나고 그 후로는 고객사를 추가로 유치하면서 수익을 올릴 계획이었다. 그래서 처음 받았던 투자금은 시스템 개발을 위해 거의 다 쓰게 되었다.
하지만 출시날 서버가 터지고, 갑과 을의 관계 같았던 고객사와 우리 회사의 관계가 더 이상 갑과 '을'이 아닌 병정무기경신임... '계' 의 관계처럼 바뀌었고, 각 매장에서 귀찮아하는 고객센터 업무나 비즈니스 로직을 어기는 모든 일들을 다이렉트로 우리 회사에서 처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객사에서 여러 가지 불만과 핑계를 대면서 약속했던 사용료를 즉시 지급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 사이 우리 회사의 큰 역할을 했던 경력자 안드로이드 개발자님과 서버 개발자님은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같은 날 퇴사를 하셨다. (알고 보니 프리랜서 계약이었다고 함) 그런데 대표님이 이 중요한 두 명을 떠나보내면서도 추가로 개발자를 뽑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남은 직원들끼리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친한 회사 사람들끼리 술 한잔 하면서 서로 알고 있는 회사 사정의 조각들을 모아보았다. 우리 회사는 이제 추가 수익이 없으면 사람을 새로 뽑을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떨어졌고, 우리 월급도 길어야 한두 달 정도 후에는 못 받게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2. 동료들의 퇴사 결심 (4월)
회사가 이제 월급을 못줄 수도 있다는 상황을 알고 나니 동료들도 나도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의리가 있고 정이 있으니 회사 망하는 거까지 한번 보자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눈치 없는 대표님은 우리 속도 모르고 갑자기 또 채찍질을 시작했다.
최근에 떠나셨던 경력자 두 분이 우리들과 대표님 사이에서 방패와 창 역할을 잘해주시며 대표님이 너무 이상한 걸 요구하면 잘 조율해 주셨었는데, 이 호랑이 같은 두 분이 떠나자마자 갑자기 남아있는 직원들 중 만만한 사람들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히 웹프론트 팀에는 아직 5년 차 개발자분이 계셔서 그렇게까지는 못해서 나는 피해가 없었지만, 앱팀은 수장이 떠나고 나니 남아있는 앱 개발자와 앱디자이너에게 가스 라이팅처럼 하거나 인격 모독처럼 깎아내리거나 농담 같지도 않은 이상한 소리를 계속 했다고 한다. (ex. 요즘은 너드들이 안 맞고 살아서 그런지 개발자들이 기가 살았다 등등??)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랑 친한 개발자 두 명과 디자이너 한 명이 퇴사를 결심했다. 앱 개발자 한 명은 위에서처럼 가스 라이팅을 당하다가 퇴사를 결심했고 웹 프론트 개발자 한 명은 입사할 때 연봉을 깎아서 들어오면서 내년에 출시하면 다시 맞춰주기로 약속을 하고 들어왔는데 그걸 아예 모른척하고 계속 대화를 피하는 점에서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앱팀 디자이너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면서 대표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퇴사 생각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3. 갑분 워크샵과 인수합병 소식 (4월 중순)
이미 세명이 퇴사 의사를 밝히고 나니 대표님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지, 아니면 그동안 지냈던 정 때문인지 갑자기 워크샵을 추진했다. 친한 사람들 중에 아직 퇴사 얘기를 꺼내지 않은 나에게 펜션을 알아보라는 요청을 했다. 작년 송년회 행사가 생각나면서 매우 귀찮았지만 대충 몇 곳에 연락을 해서 강화도 쪽에 괜찮은 곳을 예약했다.
또 며칠 안되어서 나한테만 개인적으로 선물포장과 게임 기획을 해달라고 하시길래 나도 너무 지치고 귀찮은 마음이 생겨서, 선물포장은 하겠는데 게임 기획은 못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랑 친한 앱디자이너에게 게임 기획을 시켜서 결국은 친한 사람들 단톡방에서 작년 종무식처럼 게임을 같이 찾아보고 기획하게 되었다ㅋㅋ
이미 퇴사가 확정되고 모두의 마음이 싱숭생숭한 이 시기에 워크샵은 참 오묘했다. 약간 이별여행 같은 느낌도 있고 그래도 또 막상 놀러 간다고 하니 당일날은 꽤나 신이 났다. 마침 날씨도 너무 좋고 벚꽃이 너무 예쁜 시기였어서 생각보다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다.
게임도 하고 고기도 구워 먹고 MBTI 관련된 프로그램도 하고 술도 먹고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에 대표님이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깜짝 발표가 있었다.
우리 회사가 고객사(전국적으로 꽤 규모가 있는 스포츠 회사)의 요청으로 고객사로 합병이 된다는 소식이었다. 본인이 그 회사의 CEO를 맡게 될 거고 우리 회사가 그 회사의 개발팀처럼 업무를 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도 예전부터 그런 얘기를 여러 번 듣긴 했는데, 이 상황에서 고객사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려나 하는 걱정도 좀 되었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자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이런 소식을 전하고 난 뒤 퇴사를 결심했던 직원들에게 다시 남아 달라는 제안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결심한 사람들을 붙잡을 수는 없었고 두 명의 직원들은 4월 말 모두 퇴사를 하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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