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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공부일기

스타트업 신입개발자 1년 생존기 (2) - 퇴사 썰

by hobbiz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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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야심 차게 3부작 계획했는데 일이 생겨서 못 끝내고 또 2주가 흘렀다.

과연 언제쯤 새 회사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ㅋㅋㅋ

 

아무튼 빠르게 적어보는 그 다음 이야기!!


1. 인수합병 무산

그렇게 워크샵에서 고객사로의 인수합병 소식도 듣고 돌아와서 사람들도 많이 나가고 난 후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갑자기 또 대표님이 우리를 소집했다.

 

멋들어진 피피티를 만들어서 띄우고 복식호흡으로 피티를 시작하셨다.

그동안 파악한 바로는 직원들 대상으로 이렇게 피티를 진행하는 경우 뭔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던지라, 무슨 상황인지 가만히 들어보았다. 

결론은 직원들과 면담을 하면서 의견을 들어보고 나니 인수합병을 하지 않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이제 인수합병을 하지 않고 자체 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 남아있던 분들은 대부분 가장이거나 결혼을 앞둔 분들이 많아 월급이 끊기면 안 되고 대출 등 여러모로 인수합병이 되어도 괜찮겠다는 의견인 것을 개인적으로 많이 들었던 상황이어서 대표님의 이 이야기가 좀 의아하게 들렸다.

그래서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물어보기 시작하니 약간 모든 걸 포기한 한숨과 함께 상황을 대충 이야기해주셨다.

 

인수합병하기로 한 고객사는 덩치가 크지만 빚이 꽤 많은데, 이번에 우리 회사를 인수하면서 우리 대표님을 CEO로 앉히고 그 빚에 대한 책임도 우리 대표님이 지게 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려고 했었나 보다. 

우리 대표님이 셈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어서 이미 그 회사의 재무 상황이나 이런 건 대충 알고 있었기에 그 회사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제안을 거절한 것 같았다.

아무튼 여기까지 듣고 나니 인수합병 무산은 납득이 됐고,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2. 그래서 이제 우리 회사는?

하지만 멋들어진 피피티에 앞으로의 전략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모호하게만 적혀있었다. 

전국의 헬스케어 시장 통계자료를 보여주시면서 이제 커뮤니티 서비스를 새로 만들어서 개인 고객들에게 5만 원씩 구독권을 팔겠다고 했다. 5만원씩 받으면 곱하기 몇을 해서 우리는 이만큼 돈을 벌고 이제 돈버는 회사가 될 것이다! 라는 억지 논리였다.

 

그래서 나는 고객들이 5만원씩 내고서 우리 커뮤니티 서비스에서 얻는 게 무엇인지 여쭤봤다.

대표님은 그건 우리가 잘 만들기만 하면 알아서 될 거라고, 자세한 건 만들면서 직원들이 다 같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밤낮없이 달려야 한다고, 개발도 하고 기획도 하고 지금보다 열 배로 일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기획에 동참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회의실을 나가도 좋다고 했다.

불만이 있거나 동의하지 못하면 지금 나가라. 나는 절대 뒤끝 없다면서,

지금 나가지 않으면 자기가 한 말에 동의하고 앞으로 미친 듯이 달릴 것으로 알겠다고 했다. 

 

나는 그 방을 나왔다.

 

 

3. 회사 비전에 대한 고민

나는 그 기획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잘 만들어 놓은 것도 활용을 못하는데 갑자기 새로운 것을 무작정 만들어서 팔겠다? 부족한 사람 충원도 없이 남은 사람들이 열 배로 일하면서 만드는 게 전략이라면 이 회사는 얼마 못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내가 회의실을 나오고 나서 대표님은 회의실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줄 거라느니 하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래 놓고 회의가 끝나고 나에게 와서는 그때 소신 있게 나가줘서 고맙다면서 자기는 진짜 사람들이 왜 안 나가고 앉아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고 그냥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전략이 너무 모호하고 억지스럽다. 그 자리에서 몇 시간 만에 회사의 방향성이 기획되는 거라면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되면 좋고 아님 말고 하고 전략을 세운다면 투자자도 고객도 직원들도 공감할 수 없다.

그냥 우리에게 좋은 말로 포장해서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일을 진행하면 좋겠다.

나는 새로운 커뮤니티 서비스는 아직 공감이 가지 않아 기획을 하고 싶지 않다.

기존의 서비스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기획이 확정된다면 개발자로서 그것들을 잘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싶다."라고 했다.

 

이 회의가 있고 며칠 후부터 커뮤니티 기획과 기존 서비스 개선으로 TF팀을 나누어 기존의 일과 함께 그 작업들을 병행해서 진행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존 서비스 개선 쪽이었지만 그게 원래 하던 일이었어서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번에 새로 하기로 한 커뮤니티 기획 쪽은 기획 인턴과 앱 디자이너, 개발자가 한 팀이 되어 진행했는데 매일 야근하면서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을 해서 대표님에게 보여주면 대표님은 다 마음에 안 들어하고 결국은 자기 생각대로 진행하려고 한다고 전해 들었다. 결국 갈등이 깊어졌고 그 TF팀에 있던 직원들도 나중에는 의욕이 꺾이면서 TF팀은 흐지부지 흘러가는 상황이었다.

 

 

4. 갑자기 분위기 자바 두 명 타요?

그 후 며칠 안가 또 이상한 일이 생겼다. 

갑자기 우리 대표님이 우리 투자자중 가장 큰 회사였던 A대기업 계열사의 이사님을 초대했다. 

그 이사님이 자기 회사에서 앞으로 진행하는 여러 가지 사업들과 서비스들을 소개해주시면서, 여러분이 생각이 있으면 A회사로 오라고 했다. 꼭 A회사가 아니라도 다른 관계사들이 많으니 그 회사들에 소개해 주는 것도 도와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또 혼란스러워졌다. 갑자기 분위기 자바 두 명 타요...?

 

이게 뭔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다른 회사가 무슨 사업을 하는지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어서 피티는 흥미롭게 들었다.

그 이사님의 피티가 끝나고 나서, 우리 대표님은 우리에게 주말까지 우리 회사에 남을지 다른 회사로 갈지 생각해보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나는 일요일 저녁까지 생각이 정리가 안되어서 답장을 안 했는데, 대표님이 계속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봐서 일단 남겠다고 답장을 했다.

 

 

4. 퇴사에 대한 고민

아직도 대표님의 의중이 뭐였는지는 모르겠다.

내 직원들이 나를 믿고 따를 것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우리 직원들 밥벌이를 위해서 좋은 곳으로 보내고 싶었던 걸까? 

이유야 어찌 됐든 이 과정을 겪으면서 다시 차분히 내 생각을 정리해봤고,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직원들이 믿고 따르는지 시험해봐야 아는 회사라면 진짜 문제가 있는 거고,

직원들이 이 회사 말고 다른 회사에 가야 더 잘 될 거 같으니 보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회사라면 떠나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떠나려고 생각하니 열심히 만든 서비스를 제대로 팔아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열심히 키운 내 새끼가 돈 벌어오는 기쁨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그리고 이 고민을 하던 시기가 5월 초였고 내가 이 회사에 작년 6월 1일에 입사했으니까 만 1년을 꽉 못 채운 상태였어서 더 고민이 되었다. 

이 회사에서 한 달 더 버틴다고 해도 퇴직금은 제대로 못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경력을 위해서라도 만 1년은 채우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회사에 정이 너무 많이 떨어지고 동기부여도 없고 회사의 비전에 공감을 못하게 된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한 달을 버티는 게 성격상 너무 힘들 거 같았다.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확실히 결정을 못 내리고 며칠이 흘렀다.

 

5. 스카우트 제안과 퇴사 결심

이런 소식들이 전해졌는지, 예전에 알고 있던 다른 회사의 B 대표님이 본인 회사 소속으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다. 이미 B대표님과는 일도 해봤고 인성도 좋으신 분인걸 알고 있어서 솔깃했다. 이직을 하면 B대표님 소속으로 C회사에 파견을 가게 될 건데 C회사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보다 더 탄탄하고 실력도 좋은 회사라 많이 배우고 조건도 좋을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심신이 너무 지쳐있던 상태였어서 바로 일할 수는 없을 것 같고 회사를 그만두고 좀 쉬면서 차분히 이직 준비를 하고 싶은 마음이라 생각만 해보겠다고 하고 답을 못 드렸다.

 

그 사이에 우리 회사의 대표님은 남아있는 직원들과 한 명씩 커피 챗을 하자고 일정을 잡고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오래 같이 일했던 앱 디자이너를 제일 먼저 불러서 퇴사를 해줬으면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디자이너도 이미 좀 오래전부터 퇴사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대표님이 그런 식으로 말하고 나니 미련 없이 바로 짐 싸서 집으로 갔다고 연락이 왔다.

그날이 금요일이었고 나는 재택근무 중이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나도 지금 퇴사해야겠다고 주말 동안에 결심을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월요일 오후에 잡혀있던 대표님과의 커피 챗에서 퇴사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의외로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건 대표님 계획에 없었나 보다.

이미 앞에 개발자 두 명과의 커피 챗에서 내가 포함된 팀과 계획이 공유되어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미 퇴사를 결심했기 때문에 커피 챗을 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다 이야기해드렸는데,

알겠다는 결론이 안 나고 계속 다시 생각해보라고만 말했다.

내가 뭘 얘기할 때마다 계속 그거 아니다 네가 잘못 생각한 거다 하면서 반박만 하고 자꾸 이상한 예시를 들면서 나를 붙잡았다. 

 

닌텐도 사장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아느냐 이래저래 해서 성공한 거다.

이번에 우리 회사 지원한 사람 중에 돈을 안 받고 일하겠다는 개발자가 있었다.

 아는 사람이 쿠팡에서 일하던 사람을 연봉 4억에 데려왔다더라... 등등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왜 이런 얘기들을 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별 관련 없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나는 이미 여러 번 고민 끝에 결심을 한 상태였고, 대표님에게도 희망고문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지지부진한 커피 챗에 쐐기를 박았다.

 

"대표님, 저 1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이제 연봉 올려야 하는 시기가 됐어요. 근데 우리 회사 사정을 알고 있어서 미안해서 말을 못 하겠어요.

저 다른 회사 가서도 열심히 해서 엄청 잘하는 개발자 되어있을 테니까 대표님도 회사 잘 키워서 나중에 다시 만나요.

그때는 저도 연봉 4억 주세요. 아니다 지인 DC 해서 2억만 받을게요.(웃음)"

 

돈 얘기까지 하고 나니 이제 대표님도 나를 더 붙잡지 못하고

"하... 얼마면 돼! 올려줄게! 이렇게 말하면 그림이 참 아름다울 텐데. 그렇게 못하는 게 너무 슬프네" 

이런 대화를 하면서 퇴사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나는 마지막 열흘 일한 거는 꼭 돈으로 안 줘도 된다고, 나 어차피 이직 준비하려면 노트북 필요하니까 아무도 안 쓰는 저 엘지 똥컴으로 퉁쳐도 된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이런 얘기 하면서 좋게 마무리하고 나왔다.

 

 

대표님과의 커피 챗이 끝나고 같이 일했던 경력 개발자분이 커피 한잔 하러 가자고 해서 또 커피 챗을 가서 또 붙잡혔다.

하지만 이미 결정이 끝나서 딱히 흔들리진 않았고 일급 노트북으로 때우는 거 이야기했다가 잔소리만 엄청 들었다.

왜 본인 노동한 거를 정당하게 안 받고 그지 같은 노트북으로 퉁치려 하냐고. 돈 제대로 받아서 맥북사라고!!

 

그리고 내가 너무 남의 사정을 많이 봐주려고 하는 거 같아서 답답하다고 인생 잔소리를 와다다다 해주셨다.

한 달만 더 채우면 1년이고 퇴직금도 받을 수 있는데 왜 똑똑하게 자기 걸 안 챙기냐고, 그렇게 회사 생각해줘 봤자 회사는 너한테 고마워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받을 건 다 받아내야 한다. 뭐 이런 애정 어린 잔소리들...ㅋㅋ

나도 그렇게 착하지는 않은데 너무 착하게 봐주셨던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마치고 남아있는 분들이 내 일까지 하려면 바쁘겠다는 걱정이 되어서 혹시 필요하시면 얘기해서 조금 더 일하고 마무리하고 가도 된다고 이야기했다가 또 앞가림 못하고 남들 생각만 한다고 또 혼났다.

 

아무튼 이렇게 츤츤데레데레 커피 챗까지 마치고 사무실에 가서 짐을 싸고 일을 마무리하고 다른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이미 미련이나 아쉬움이 남지 않을 정도로 모든 걸 쏟아부었어서 그런지 그냥 후련하기만 했다.

 

 

후련한 마음으로 박스를 씩씩하게 들고 나왔는데 그냥 갑자기 너무너무 피곤해져서 길바닥에 드러눕고 싶었다.

다행히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박스를 택배로 바로 부쳐버리고 집에 가는 길에 술을 한잔 하고 퇴사를 기념했다.

 

우여곡절 많았던 개발자로서의 첫 회사..!

너무 힘들었지만 그만큼 재미있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너무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준 회사!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도비는 아주 잠시 자유가 되었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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